「어떠냐! 차하늘 특제 미역국의 맛이!」 차하늘의 천성은 '열심' 그 자체였다. 처음 보육원을 나와 미용 학원에서 일을 배울 때의 태도나, 동생 일로 학교를 들락거리던 시절의 꼿꼿한 목소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미루어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뭐든 그 순간에 후회없이. 열심히, 가 삶의 근간인 사람이었으니까. 「소고기가 퍽퍽~...
「정 불안하면 졸업하고 내가 살 자취방으로 오든지. 몇 달 정도는 거둬줄 수 있으니까.」 거둬준다는 건 나의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눈을 감고 양을 세던 것을 멈추고, 고단하게도 자고 있는 당신을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내가 이 집에서 멋대로 자리를 내어 들어온 것이 벌써 세 달이 되어오고 있었다. 극악하기로 유명한 수업의 과제를 끝마친 후임...
여름이 한참 지난 가을을 스치는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이 시절엔 슬슬 단풍도 떨어질 때여서, 길가에 붙은 단풍들이 비에 젖는 냄새가 퍽 나쁘지 않았다. 내가 우산만 있었더라면 나쁘지 않은 하교길임이 분명했다. 중간고사 낙제를 면하기도 했고! "......오토바이 다 젖었겠다...." 건물 밖에서 같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신이...
90..01…13…88..02….16…..어.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이자 자질구레한 숫자 몇 개가 화면에 잡혔다. 복권. 지금껏 특별히 잘난 게 없던 삶이었고, 당첨운도 그와 마찬가지로 바닥인 데다가 그를 만나고부턴 번번이 돈만 버리곤 했으니 자그마한 휴대폰 창에 적혀 있는 글자가 가히 놀라울만 했다. [4등 당첨!] 일 십 백 천.. 0이 몇 개나 붙어있는...
살이 타다 못해 벌겋게 익어버리는 계절을 그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등 뒤에서 매미가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듯 시끄럽게 울었다. 낯선 곳에서의 일상은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었으나 이따금 구역질이 치밀 때가 있었고, 그런 날엔 괜한 날씨 탓을 하는 게 현명했다. 뭐, 기숙사 안에만 박혀 있었더라면 날씨를 탓할 이유도 딱히 없었겠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 ...
창문을 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노트북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공기는 그 작은 마을에서만 벗어나면 뭐든 될 줄 알았던 꿈만큼이나 답답했으며 귓가엔 파도 소리 대신 축축한 낙수음이 가득했다. 코 아래를 스치는 비릿한 냄새가 옥색의 바다 향과는 결이 다른 것마저 불쾌했고, 스무 살의 도쿄는 녹록지 않게 더웠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반질반질한 교복을 입은...
"........." 신혼 여행에서 남편이랑 길이 엇갈릴 수도 있구나. 시선을 아득히 들자 우뚝 솟아오른 카사밀라의 머리가 보였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좋아하기에 넉넉히 카사밀라를 하루 일정으로 통째로 넣었고, 어머니께 드릴 브로치를 사러 잠시 갈라졌고, 갈라진 틈에 단체 관광객들이 한 번 우르르 지나갔고……. 어쨌든 하늘은 참 얄미우리만치 맑았다. 「Qui...
"웬 거야?" "어머님께서 서예교실에서 써 봤다고 주셨습니다." 간만에 들었던 까치발을 사뿐히 내리곤 시선을 들었다. 입춘대길. 반질반질한 종이 위로 유려하다 못해 강가에 띄우면 그대로 흘러갈 것만 같은 글씨가 보였다. 허전한 문가에 뭔가를 붙여놓는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이라, 팔짱을 끼고 가만히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허릿가에 손이 감겨왔다. "이야, 우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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